나의 이야기

중세 종교재판이 지금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독수리2 2010. 3. 14. 17:30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충돌로 인한 생존위기를 진단하고 있는 많은 석학들은 한결같이 그 분쟁의 씨앗이 종교라고 주장한다.

문명, 문화, 정신을 종합하는 종교간의 갈등이 생명, 평화, 화합의 대 통일장을 이끌어내는데 가장 큰 장애요소라는 것이다.

특히 유일신을 근거로 하는 서구의 종교는 원시종교 수준에서 영적인 성장을 멈추어서 눈부신 과학혁명의 시대를 사는 인간들에게 정신적 사막화를 이루어 문명의 이기를 악마의 손에 쥐어주는 저승사자로까지 표현한다.

필자도 이러한 세계 석학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1994년 조희성 총재께서 1차 구속된 후 승리제단 신도들은 수 십 번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너무나 억울하여 억장이 무너지고, 분통이 터지는 경험을 하였다.

하여, 현재 승리제단을 대상으로 자행되고 있는 - 지금부터 400∼500년 전 문맹의 종교에 의해서 학살된- 반생명적이며 시대적 요구를 역행하는 종교광인들에 의한 재판과 동일한 내용의 광기어린 재판 두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갈리레이 갈릴레오에 대한 재판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시대의 마녀재판이다.

현재 승리제단을 상대로 진행되고 있는 종교 재판은 이 두 재판의 혼합 즉 ‘퓨전 마녀 재판’이다

흔히들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세계관이나 우주관, 인생관, 가치관 등의 전래된 관습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수용하고자 할 때, 그러한 ‘패러다임 이동’의 좋은 예로서 ‘코페르니쿠스的 전환’을 인용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라는 저서에서 “ 철학자의 사색은 다수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철학자의 목표는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대 전환은 우연히도 기독교적인 종교관 속에서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 진 것들이다.
   


기원전 170년 프톨레마이오스 시대부터 시작해 약 1,500년 동안 보편적 진리로 여겨졌던 전통적인 우주관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창조적 파괴를 이루어 새로운 우주관을 탄생시킨 것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다. 그러나 파괴당하는 입장에 선 신학자들이나 추기경들의 저항은 대단했다. 그들의 기득권을 상실할 충격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이를 신봉하던 조르다노 브루노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정에 서게 만들었고, 그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브루노는 1600년 화형에 처해지고 갈릴레이는 1633년 재판에 회부되었다. 당시 그 재판의 일면을 소개한다.

1633년 6월 22일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교회 연회실-1600년 조르다노 브루노가 화형을 선고받은 장소-에서 열린 종교재판 최종심문을 마친 후 최후 진술에서 갈릴레이는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서 자신이 주장했던 ‘지동설’을 철회하면서 다음과 같이 허위 진술을 한다.

“나는 내 이론을 믿지 않고, 저주하고 경멸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태양이 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견해를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라고 여깁니다.”

본 재판이 열리기 앞서 교황 우르바누스 8세의 비서는 먼저 갈릴레이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달 표면에 밝은 점과 어두운 점이 있다는 당신의 주장은 달과 지구를 비슷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를 확대 해석하여, 당신이 달에 인간이 산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옆 사람이 그 인간도 아담의 자손인지, 노아의 방주에 탔었는지 묻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대담하고, 꿈속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말들이 시중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당시 종교재판소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옹호한, 천문학 관련 대표작 『대화』(1632)로 인해 갈릴레이는 교황청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죄인이 되어 1633년 6월 22일 마지막 재판이 있기까지 네 번의 심문과 23일간의 구금을 끝으로 화형을 면한 채 종교재판은 막을 내렸다.

판결에 따라 갈릴레이에게는 ‘무기한 가택연금’이라는 형이 내려졌고, 그 충격과 고통으로 인해 1637년 눈이 멀었으며, 1642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다.

갈릴레이가 죽은지 100년 만에, 그의 시신이 산타 크로체 교회의 중앙 통로에 안치되었고, 1835년에는 그의 저서『대화』가 금서에서 풀렸으며, 1909년 20권에 달하는 갈릴레이의 전집이 피렌체에서 발간되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아인슈타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갈릴레이 재판을 철저하게 다시 조사할 것을 공포했고, 1992년 가톨릭 교회는 갈릴레이를 복권시켰다.

(참조, 「권력과 양심의 파워게임, 세기의 재판50」-마리자겐슈나이더 지음)

누가 갈릴레이를 눈멀게 하고, 죽게 만들었으며, 왜, 무엇이 진리를 歪曲(왜곡)시키고, 死藏(사장)시켰을까. 그것은 잘못 기록된 성경, 이를 맹신한 종교재판관들, 그들을 추종한 狂信徒(광신도) 들이었다.

당시의 종교재판관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태양이 돈다는 프롤레마이오스의 견해를 불변의 진리로 여겼고 이 진리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중심이 그러했고, 『구약성서』 「여호수아」10 장 12, 13절이 이 이를 뒷받침했다.

“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 그러자 백성들이 적에게 복수하기를 마칠 때까지 해가 머물렀고 달이 멈추어 섰다.” 그들은 성경의 이 구절이 하나님 말씀인 것으로 믿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으로 증거”라 하여 갈릴레이를 눈멀어 죽게 하였던 것이다.

 


성경의 잘못된 기록으로 인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또 하나의 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 항구도시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이었다. 성경 『구약성서』「출애굽기」22장 18절 “ 마녀들을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는 구절 때문이었다.

위에서도 인용한「세기의 재판50」이라는 책에서는 당시의 재판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세일럼에도 정치적 소요가 있었다. 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가문 퍼트넘家와 로터家는 주도권 경쟁을 벌였고, 새로 부임한 목사 새뮤얼 패리스 까지 말썽을 일으켰다. 시민들은 패리스를 몰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목사는 시민들의 반항에 계속 경고를 보내면서 앙심을 품었다.

1662년 1월, 목사의 딸 베티 패리스가 이상한 병을 앓았다. 미친 짓을 했다. 얼마후 베티 패리스의 12살짜리 앤 퍼트넘도 비슷한 증상으로 자리에 눕고, 주변에 여러 사람이 유사한 증세의 병을 앓았다. 순식간에 악마의 소행이 틀림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악마에 씐(?)’ 소녀들은 ‘세일럼의 마녀’로 패리스 목사의 하녀인 인도에서 온 티튜바를 지목했다. 새뮤얼 패리스 목사는 티튜바를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냈다.

그녀는 더 이상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 공범을 댔다. 사라 굿과 사라 오스번 그리고 브리짓 비숍을 사탄의 앞잡이라고 말했다.

한사람은 싸움을 즐기는 거지였고, 다른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나운 노파였으며, 마지막 이는 파티에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여관집 주인이었다.

세 여자 모두 죄를 완강히 부인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재판관은 ‘허깨비’를 증거로 인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세 여자는 마녀사냥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마녀사냥의 광기는 온 도시를 사로잡았다. 점점 ‘신들린 자’들이 많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 기회를 정치적 경쟁자를 숙청하는데 이용했다. 서로 좋지 않은 관계에 있던 사람들을 마녀로 고발하여, 옷을 벗기고 가슴에 나무판을 매달고 돌멩이를 올려놓아 이틀만에 그들을 죽게 했다.

세일럼 마녀재판의 결산표는 끔찍했다. 거의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붙잡혀 마녀행위를 했다는 명목으로 재판을 받았고,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죽은 사람도 있었으며, 1692년 6월에서 9월 사이 13명의 여자와 9명의 남자가 목이 잘렸고, 한 남자는 압사했다. 사탄의 심부름꾼으로 의심받은 개 두 마리도 처형되었다.

정권 출범이후 대한민국을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목사를 청와대까지 불러들였던 문민정권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사이비 종교 척결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서 시작한 마녀사냥에서 마녀집단으로 지목한 승리제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몇 백년 전의 종교재판 시나리오를 현대적인 재판방식으로 각색하여 정권의 시녀노릇을 하던 검찰과 재판부 그리고 언론이 공동으로 연출·감독을 맡고 실종자 가족과 살인자들을 주연으로, 승리제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조연으로, 음란과 재산 강탈에 눈이 먼 광란의 종교단체 신도들을 엑스트라로 내세워 1994년 조희성 총재를 1차 구속한 이후 서구 중세시대 받아들여졌던 이하의 종교적 지식과 영적인 수준 그리고 재판방식을 그대로 21세기 한국에 옮겨와 마녀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진리의 존재를 증명해 보였고, 반드시 정의가 승리한다는 확신을 주었다. 비진리와 불의의 편에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무리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진리가 드러나지 않은 현재의 상태, 그들이 핍박하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의 저항이 아니라, 진리가 드러나 그들이 한 순간 잘못 내린 심판을 재 심판할 역사 그리고 그 증명된 역사속에서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증오심을 품게될 후손들이다.

아직 섣부른 권력욕에서 취생몽사하는 모리배들이 회개할 시간은 남아있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의 무지와 과오를 깨닫고 진리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안 병천 승사

링크: 구세주 재판 일지